
< 3’ > 퍼포먼스
퍼포먼스(가변설치)_녹음된 데이터베이스로부터 변환된 다수의 악보와 편곡된 피아노 사운드, 백 마스킹 된 소리 그리고 연주자_2020
2020.07.31
2020.08.04
2020.08.12
2020.08.13
개인전
2020《 집단데이터의 변환 : 3’ 》, Art Space 128, 대전 / 2020 청년예술창작지원, 대전문화재단 지원
전시 기간
2020. 7.31 ~ 8.14
평론
김채원의 작업이 말하고자 하는 것
‘살아있는 사람을 짓누르는 악몽 같은 역사가 있다면, 사람들은 몸을 흔들어 잠에서 깨어나, 그런 악몽의 역사에서 벗어나려 할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그런 잠에서는 깨어나는 것이 자연스럽다.’
- 캐슬린 로드(Catherine Lord), 「무엇이 전설을 만들었나 : 짧고 슬픈 다이안 아버스의 삶」 중에서-
젊은 작가 김채원의 작업 <집단데이터의 변환>은 누군가를 짓누르는 악몽, 혹은 심리적 흉터에서 비롯된 그 몹쓸 잠에서 벗어나려는 자연스러운 의지에서 시작되었다. 그래서 작가의 작업은 짓누르는 악몽이나 심리적 흉터와 연루된 특정한 ‘집합공동체’의 어떤 ‘데이터’를 ‘수집’, ‘재생’, ‘변환’하는 레퍼런스 의존적 리서치기반이 형식적 특징이다.
2018년부터 2020년 초까지 진행된 이 작업은, 대한민국 전라북도 k군에 위치한 특정 교회에서 2년여 동안 주 1회 100여주 1시간 가량의 예배를 하나의 사건으로 특정하고 녹음한 음성데이터가 주 레퍼런스이다. 음성데이터는, 일주일에 한번 동일한 장소와 동일한 시간대에 모이는 교회(사람들)의 특정한 예배시간(의 소리)를 녹음한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 1차 데이터를 그야말로 레퍼런스로서 채택하고 있으며, 이것을 전혀 다른 매체인 드로잉, 사운드 설치, 음악, 영상 그리고 퍼포먼스 등으로 ‘변환’하여 제시하고 있다.
‘변환’ 이전 1차 데이터 속 음성들은, 남성과 여성, 어른과 아이, 사제와 신자 등의 젠더나 연령, 혹은 집단 내 직위 등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적어도 같은 공동체 혹은 그들의 주변사람이라면 음성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쉽게 알 수 있다. 날것 그대로의 1차 데이터는 작가에 과감한 시도 아래 사운드, 영상, 퍼포먼스 등 전혀 다른 매체로의 ‘변환’과정을 거치면서 변화된 국면과 맥락 안에 위치하게 된다. 예컨대 1차 녹음된 데이터를 한번 혹은 두 번, 세 번 등의 각기 새로운 ‘변환’과정으로 재생한 작업을 함께 설치한 <3'>이 대표적이다. <3'>는 각기 다른 ‘변환’과정을 거친 작업들로 구성되었다. 프로그램을 통해 백 마스킹 되어 섞이고 엉켜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들로 변환된 음성작업과 이를 다시 수백 장의 악보로 또 변환시켜 전시장 바닥에 무질서하게 쌓아놓은 종이설치 작업은 이들 악보를 편곡, 연주하는 피아노 사운드와 함께 공명하고 있다. 이 작업에서 눈여겨 볼 것은 바로 작가에 의해 1차 데이터 속 음성들이 수차례의 정체를 세탁하는 ‘익명화’ 과정을 거친다는 사실이다. 이는 각기 다른 프로그램을 통한 ‘변환’에 의해 맥락이 변화함에 따라 새로운 정체로 거듭 재현되고 있다.
녹음된 데이터베이스로부터 나온 <드로잉>연작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1차 데이터의 변환 이미지의 콜라주인 이들 작업은 오선에 그려졌으나 하모니를 전제한 음악이라 할 수 없는 악보들의 파편과 아주 작은 크기 탓에 읽을 수 없는 텍스트 조각이 작가의 드로잉과 함께 콜라주되있다. 악보이되 음악이 아니고 텍스트이되 읽을 수 없는 조각들의 콜라주는 음악인지 글인지 그림인지를 불명확하게 만듦으로써 관객을 당혹케 한다. 근원적인 차원에서 이러한 위반은 k군의 어느 교회라는 특정한 집합공동체(데이터베이스)를 레퍼런스 삼아 연속적인 ‘변환’을 시도하는 김채원의 작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짐작케 한다.
사실, 작가 작업의 레퍼런스였던 교회는 신의 무한한 사랑과 평화를 상징하는 ‘종교’라는 고정되고 관념화된 정체성을 부여받은 곳이다. 김채원 역시 교회의 일원으로 리서치 기간이던 당시는 교회 내의 갈등과 대립, 반목의 음성들이 잦았던 때였다. 일반적인 사회공동체에서 일어난 고조된 갈등의 음성이 아닌 ‘신의 장소=교회’라는 사회적인 고정관념을 위반하는 교회 내 불협화음은, 작가로 하여금 집단과 개인에게 부여되는 고정관념의 근본적인 실체에 대해 질문하게 하였던 것 같다. 우리 사회 내의 고정관념화된 정체성과 끊임없이 변화하는 실존적 정체성 간의 간극을 경험한 김채원은 1차 데이터의 연속적인 ‘익명화’ 과정의 수행을 실천함으로써 자신의 작업이 특정한 교회나 종교 내 사건을 리포트하기 위한 르뽀식 차원을 떠나 있음을 전한다. 이는 학교, 정당, 젠더, 국가, 민족, 인종 등 특정한 정체성을 강요받아 온 현대사회의 경직된 구조와 이분화된 상황이 강요하는 심리적 압박에 대한 고발이자 은유일 수 있다. 작가는 나아가 ‘정체성은 고정되거나 일관적인가.’ ‘정체성 구축에 영향을 미치는 힘은 안정된 것인가’를 질문한다.
유동적이고 단순화할 수없는 집단 혹은 개인의 정체성 문제는 김채원에 의해 수집된 데이터들의 재생, 변환 등의 과정 속에서 그 어느 것 하나 동일하지 않은 결과물로서의 작업들이 증명하고 있다. 사회 구성체라는 공동체는 그것이 종교, 정치, 학교 등을 불문하고 서로 섞이며 교환과 적응이라는 과정에 지속적으로 관여한다. 그리하여 정체성 구축에 영향을 미치는 힘은 안정된 것이 아니므로, 정체성 자체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다시 말해서, 분, 초, 시간, 주, 달 등의 일상적 단위와 맥락이 시간의 흐름과 함께 변화함에 따라 공동체 혹은 개인의 정체성 역시 유동적이고 변형 가능한 것이다.
현대사회가 강요해 온 정체성과 같은 고정관념은 캐서린 로드가 얘기하는 ‘살아있는 사람을 짓누르는 악몽 같은 역사’와도 같다. 여기서 김채원의 작업이 지닌 미덕이 분명해 진다. 사람들의 몸을 흔들어 ‘그런 악몽의 역사’ 그 몹쓸 잠에서 벗어날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서사와 담론의 적절한 혼용과 균형유지를 시도하면서 예술이 결국 도달하고자 하는 미학적 가능성을 환기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글/김주원(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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